부동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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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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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의 방향성



'고도성장'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며: 선진 디벨로퍼 모델의 시사점

지난주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다. 오래전 매일경제나 한국경제에서 주관하던 일본·동남아 부동산 투자 답사 프로그램이 활발했을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이 같은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췄고, 최근의 현지 답사는 오히려 "성장률 숫자 너머"를 보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특히 하노이는 단기간의 초고속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컸던 지역이다.

일부 자산가와 기업은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꿈꾸며 진출했지만, 현지에서 느껴지는 현실은 복합적이다.

대기업부터 다단계 구조의 소규모 법인까지 이미 시장에 포진해 있었고, 외부인이 들어갈 여지는 크지 않았다.

오염된 환경과 낙후된 인프라는 장기 거주 혹은 안정적 자산 운용 관점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단기 체류자를 위한 소비 공간은 잘 마련돼 있다는 평도 있었으나, 이는 실질적 도시개발 관점과는 거리가 있다.

결국 이런 경험은 '기회의 땅'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냉철한 리스크 인식을 통해 얻은 학습으로 귀결된다.

지금처럼 글로벌 금리 고점기와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는 성장률 숫자보다 '시장 구조'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 독일, 미국 같은 선진 도시개발 모델이 갖는 전략적 함의가 커진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오랜 기간 공급자 중심 구조였다. 건설사와 시행사가 주도하고, 소비자는 선택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회구조의 변화—고령화, 1인 가구 증가, 자산 이중구조 심화—는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의 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일본의 주택임대 및 개발 모델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은 주택임대 사업자(サブリース業者)가 토지와 건물 소유자, 시공사, 관리사무소 역할을 통합하거나 체계적으로 분화하여 운영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입주자 요구 기반의 상품기획, 임대 후 유지관리, 공실 리스크 관리 등에서 한국보다 10년 이상 앞서 있다.

분양이 어려운 시공사들이 자연스럽게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는 모델도 일본에선 이미 일반화된 추세다.

한국의 민간임대주택사업이나 REITs 모델이 제도적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반에 스며들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시공-운영’의 수직통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를 선진화된 디벨로퍼(Developer) 조직 혹은 자산운용사(AM) 체계로 해결하고 있다.



디테일에서 읽는 시스템

현지에서 느낀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디테일은 도시개발이 '공급'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우체통 번호키, 화장실 점등 여부를 알 수 있게 만든 문 구조, 엘리베이터 외부에서 내부 영상을 보여주는 안전 시스템, 건축면적 손실 없이 침실캡슐을 삽입한 구조 등은 사용자 중심 사고의 결정체다.

이는 단순한 인테리어 기술이 아니라, '거주 경험'에 최적화된 개발 전략의 산물이다.



디벨로퍼의 역할 재정의

한국의 개발사업자는 토지확보, 인허가, 시공사 선정, 분양마케팅까지의 과정을 총괄하는 '기획형'에 가깝다.

그러나 선진국의 디벨로퍼는 금융, 기술, 디자인, 사용자 행동 분석 등 다학제적 통합 전략을 구사하며, 도시의 ‘삶의 질’을 설계한다.

예컨대 독일의 베를린에서는 사회적 임대주택을 포함한 개발 모델을 공공금융과 민간 디벨로퍼가 협력해 조성하고 있고,

미국의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지역 커뮤니티와 ESG 기반의 개발모델을 통해 사회적 자산 축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익 추구형 개발과는 결이 다르다.



'배움의 방향'을 바꿀 때

성장률이 10%를 넘는 시장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과거적 사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먼저 성장한 나라'의 실패와 성공을 배워 우리에게 맞는 방식으로 녹여내는 일이다.

일본, 독일, 미국은 문화적 차이가 크지만, 그 구조와 시스템에서 배울 점은 명확하다.

이제는 공급자 중심 개발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금융·디자인·기술 융합형 개발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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